메디시티 대구가 외면하는 대구청년, 또다른 돌봄비극을 막을 수는 있는가?

대구에 사는 20대 초반의 강도영(가명)이라는 청년은 지난 11월 10일 대구고등법원에서 항소를 기각하여 존속살해라는 끔찍한 죄명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8월 1심을 선고받을 때만 해도 뇌졸중으로 쓰러져 간병을 하던 아버지를 방치하여 사망에 이르게 해 아버지를 굶겨죽인 패륜아로 보도되었지만 사건을 의아하게 보았던 한 인터넷 탐사보도 매체 ‘셜록’의 보도로 가슴 아픈 비극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 이면의 진실에는 군복무를 위해 휴학후 편의점 알바로 근근히 용돈을 벌던 청년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병원비와 간병의 부담이 있었고, 아버지 병원비를 위해 퇴직금을 털어 보태고 있던 삼촌에게 쌀이라도 사먹을 2만 원만 꿔달라고 사정해야 했던 극심한 가난이 있었다.

이러한 이면이 알려지자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힘든 현실에 정부와 정치권은 반성과 안타까움의 목소리를 내었다. 김부겸 국무총리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질의 등에서 이러한 일을 미리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정책 점검 등을 다짐했고, 일부 국회의원과 여야 대선후보들은 직접 도움을 주겠다고 연락을 하거나 SNS를 통해 안타까운 마음과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관련 보도를 통해 진행된 강도영씨에 대한 탄원서에는 6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이 일이 일어난 대구는 유독 조용해 보인다. 대구시장도, 대구시의 어떤 정치인에게서도 대구청년에게 일어난 이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반성, 이러한 일이 또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럼 이 대구청년의 일과 대구시는 관련이 없는 일일까? 중앙의 정부와 정치권만 책임을 통감하면 될 일인가? 의료특별시를 표방하는 메디시티 대구에서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와 돌봄을 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극단적 비극으로 귀결되었던, 한 대구 청년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면서, 이것이 이 청년만의 일이었던 것인지, 또다시 이 같은 비극을 과연 대구시에서 막을 수 있는지 따져보고자 한다.

‘존속살해’ 전까지는 모두가 외면한 대구청년의 비극

비극의 시작은 지난 5월 8일, 아버지가 시신으로 발견된 지 불과 8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도영씨의 친할머니가 이미 뇌졸중으로 10년을 누워계시면서 한번 홍역을 치렀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출을 해서 아버지와 단둘이 단촐하게 사는 처지에 아버지는 해고 노동자로 사정이 넉넉할 순 없었지만 한 달 전 한 자동차 부품공장에 재취업이 되어서 이제 막 다시 가계를 꾸려갈 수 있을 참이었다. 그러던 중 목욕탕에서 뇌출혈로 쓰러졌고, 긴급 수술로 아버지는 살아났지만 회복가능성이 없는, 거의 전신 마비상태였다. 해를 넘긴 지난 1월에 퇴원했지만 병원비는 평생 만져본 적이 없는 1,500만 원이 나왔고, 그 이후 요양병원 병원비도 500만 원에 이르렀다.

병원비는 삼촌이 가족 몰래 내어준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어찌 메웠지만 청년에게 닥친 현실은 너무 가혹했다. 월세 30만 원은 이미 몇 개월씩 밀리기 시작했고, 가스비, 통신료 등이 연체되었지만 대학 휴학생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란 편의점 알바정도가 고작이었다.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하는 음식으로 어찌 배고픔을 달래다가 쌀이라도 사게 2만 원만이라도 빌려달라는 문자를 삼촌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다시 아버지는 응급실로 실려 갔다. 더 이상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퇴원 후 일에 대해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2시간마다 체위변경을 해야하고 호스를 코에 삽입해서 음식을 넣고, 대소변을 모두 받아내야 하는 아버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며 월세도 연체되고, 가스도 끊긴 집안 사정에 편의점 알바조차 쉽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이미 친할머니의 10년 병수발 경험이 있는 아버지도 그 결말이 어찌 될지 너무나 잘 알 터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부르기 전에 방을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고, 방에 들어와 우는 아들에게도 눈만 껌벅이며 물을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아들은 닷새를 자기방에서 울면서 시간을 보냈고, 결국 아버지는 시신이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신고한 아들은 119 구급대원과 함께 온 경찰에게 존속살해혐의로 순순히 체포되었다.

비극이 벌어지기 전까지 작동하지 않은 대구시의 의료와 복지

대구시는 2009년 메디시티를 선포하고, 세계적인 의료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메디시티 대구로서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 질과 서비스를 갖추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의료도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비전이다. 이를 위한 기반으로 대구는 이미 5개 상급병원, 약 3,800개 병의원, 3만 9천여 명의 보건의료인력을 갖추고 있으며 최고의 의료진 확보, 최선의 진료 실현, 내 집같이 편안하고 안전한 병원,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서비스를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병원비와 가난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아버지를 죽도록 놔두어야 했던 대구 청년에게 메디시티는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대구시의 복지정책도 없었던 것이 아니다. 2006년부터 정부에서 읍면동 주민센터를 행정복지센터로 명칭을 바꾸고 복지가 필요한 주민을 찾아나서는 직접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사업에 발을 맞추어 대구시는  ‘읍면동이 의료까지 찾아가서 보듬는 감동복지’라는 의미를 담아 동의보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10월부터는 생활이 어렵지만 조건이 안 맞아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지 못하는 시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시민행복보장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16년에는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복지현장 종사자들과 대구시가 함께 대구시민을 위한 복지기준을 소득, 주거, 돌봄, 건강, 교육 등 분야별로 설정하고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때 건강영역의 복지기준으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받지 못하는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내세우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적재적소 맞춤 건강지원 서비스와 간병 부담없는 병원 확대를 약속했었다. 하지만 이 대구청년에게는 의료까지 찾아가서 보듬지도, 시민행복을 보장하지도 못했고, 의료 사각지대 해소는 공염불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강도영씨에게는 어떤 지원이 가능했던 것일까? 물론 우리나라에 이러한 경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들은 모두 강도영씨를 비켜가거나 너무 멀리 있었다. 일정수준 이상의 병원비를 제하거나 환급해주는 본인부담금 상한제가 있었지만 수천만원 병원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간병비와 비급여항목은 모두 제외되기 때문에 나중에 안내된 환급 급액은 고작 2천원 수준이었다. 비급여 항목을 포함하여 최대 3천만 원 지원이 가능한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가 있지만 역시 간병비는 포함되지 않고 외래는 6대 중증질환에 제한된다. 긴급의료지원도 가능하지만 최대 300만 원까지로 턱없이 부족한 수준에 불과했다. 물론 이러한 지원제도들을 모두 챙기면 2만 원도 없는 상황에서 도움이야 되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경제적 이유로 위험한 상태에서 퇴원한다고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까지 받았지만 이러한 의료비 지원제도에 대해서는 안내조차 하지 않았다. 2015년에 제정된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제13조 제2항 제3호에는 분명 의료인은 위기에 처한 지원대상자를 발견하였을 때 신고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고 하고 있지만 이는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강도영씨는 아무런 지원요청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권덕철 복지부장관도 “여러 복지제도가 있었음에도 5년 내에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어서 안타깝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분명 강도영씨는 주민센터에 어떤 지원이 가능한지 문의를 했지만 접수조차 안되었기 때문에 기록이 없을 뿐이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문의했을 당시 장애진단서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고, 병원에 알아본 결과 또 돈이 든다고 해서 그것도 포기했다는 것이다. 유추해볼 때 거동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상태를 이야기하며 문의한 것에 대해 장애등록부터 필요하다며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했을 터이다. 하지만 당장 돈이 없는 상황에서 또 돈을 들여 서류를 끊고 신청해봐야 결과를 알 수 없는 지원을 접수하지 못했던 것이다. 장애등록과 관계없이 일부라도 지원이 당장 가능한 긴급복지지원제도나 지속적인 생계보조를 받을 수 있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아예 안내조차 되지 않은 듯하다. 

나중에 지자체가 찾아내기는 하였다. 사각지대 발굴을 위해서 전기료, 수도세, 가스비 등 연체정보를 수집·분석하여 위기대상자를 지자체에 대상을 통보하면 지자체가 확인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수개월 이상의 연체가 되어야 명단에 올라가기 때문에 3월부터 본격적으로 전기료, 가스비 연체가 시작되었지만 연체자 명의로 아버지가 발굴대상이 된 것은 이미 시신으로 발견된 이틀 후, 5월 10일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기자가 동 주민센터 담당자에게 확인했을 때에는 대상자 사망으로 인한 위기가구 지원 비대상으로 ‘처리’되어 있을 뿐이었다.

지역에서 시민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지자체의 책임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누구를 탓할 마음도 없다며 자기 잘못을 자책하는 이 대구청년은 정말 자신이 오롯이 치러야 할 죄값을 안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가족의 간병을 짊어진 사람들은 이와 같은 고립무원에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절박한 상황과 윤리적 갈등에 공감한다는 점이다. 강도영씨가 존속살해의 죄를 짊어져야 한다면 약속을 저버리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직무를 유기한 죄를 물어야할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만약 메디시티 대구를 표방하면서 약속했던 것처럼 내 집같이 편안하고 안전한 병원,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서비스가 이루어졌었다면, 대구시민 복지기준선에서 약속한 것처럼 의료사각지대 해소와 간병부담 없는 병원이 이루어졌었더라면, 동의보감 사업에서 말하는 의료까지 찾아가서 보듬는 감동복지가 이루어졌었더라면 강도영씨의 비극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거창한 구호와 약속이 아니더라도 법에서 규정한 의료인의 의무를, 강도영씨와 아버지가 전전했던 병원에서 누구 하나라도 지켜졌었더라면, 찾아가는 복지 전에 찾아오는 문의라도 적극적으로 대응을 했었더라면 존속살해라는 막다른 길로 치닫지는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서울시는 2019년부터 돌봄SOS센터라는 자체 사업을 통해 각 자치구마다 사회서비스원 종합재가센터를 중심으로 돌봄이 필요한 시민에게 간병 등을 지원하는 일시재가, 병원이용 등에 대한 동행지원, 정기적인 식사 제조와 제공을 하는 식사지원,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주거편의 등의 서비스를 직접 방문하여 조사한 결과를 가지고 적절한 서비스를 설계하여 제공하고 있다. 정부에서 돌봄이 필요한 주민에게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실험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16개 지자체 중에서도 주민이 돌봄을 신청하기만 하면 3일 이내에 직접 방문조사를 진행해서 통합적인 지원을 설계해서 제공한다든지, 지역의 병원에 입원 단계에서부터 상담을 통해 퇴원과 동시에 돌봄서비스를 연계하는 퇴원연계사업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업을 추진한다고 해서 강도영씨 사례에서 나타난 사각지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찾아가는 복지를 표방하면서도 결국 본인이 모두 서류를 챙겨서 신청해야 가능했던 지원을 지자체가 책임을 지고 직접 방문조사를 통해 욕구를 파악하고, 시민에게 맞는 서비스를 지자체가 찾아서 설계하여 제공해주는 새로운 방식은 이전보다 크게 진일보한 것임은 틀림이 없다. 그리고 연령이나 질병의 종류, 비용항목 등 까다로운 조건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가를 현장에서 판단하여 지원을 결정하는 방식 역시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에 변화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구시는 이미 2019년 4월에 공공이 책임지는 돌봄을 수행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원을 전국 최초로 개원한 바 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초기 대구경북을 휩쓸던 어려운 시기에 긴급돌봄서비스 지원단을 구성하여 180여 명에게 긴급지원을 하여 전국 모범사례로 국무총리상까지 수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대구시 사회서비스원은 전국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은’ 사회서비스원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성과에 비해 대구시의 투자가 인색하여 얻게 된 웃지 못할 명성이다. 대구시 역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선도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제라도 외면했던 대구청년의 비극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사각지대 없는 돌봄을 만들기 위한 투자에 나설 수는 없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또다른 대구시민의 돌봄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고 대구광역시사회서비스원 이슈진 14호 “메디시티 대구가 외면한 대구청년, 또다른 돌봄 비극을 막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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