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책은 왜 항상 체감도가 떨어질까?

무슨 대책이 나오더라도 총액만 크고 대책은 백화점식인 기시감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정부에서 굵직한 대책들이 쏟아진다.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가계부채, 고용불안 등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이상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들이 나올 때마다 내용은 다른데 묘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발표되는 대책은 예산 총액만 눈에 띄고 내용은 가짓수만 많은 백화점식이고, 대책 하나 하나에 돌아가는 예산은 크지 않으니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다. 결국 대책만 많고 효과는 체감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뒤 따른다.

이런 문제는 각종 대책이 나올 때마다 반복되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정부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다.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정책 생산과 집행구조의 문제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문제가 된 고용정책만 들여다보더라도 주요 정책 담당 부처만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중소기업벤처부, 행정안전부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일자리 창출, 고용서비스 등 정책 영역에 따라 구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일자리 사업만 하더라도 복지부는 자활사업으로, 고용부는 사회적 기업 관련 사업으로, 행안부는 지역 일자리 사업으로, 중기부는 창업과 소상공인 지원으로 자기 몫을 걸치고 있다.

부처와 부서의 나눠먹기식 정책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책 추진체계

그럼 누가 일자리 사업을 책임지고 총괄하고 있는가? 관여하는 부처가 다수니 고용부 장관이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국무총리나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럼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인가? 이러한 위원회는 심의하고 조정하는 일이 전부이다. 결국 고용 정책을 책임있게 총괄하는 주체는 ‘아무도 없다’가 정답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출산과 보육 문제는 어떠한가? 여기에는 복지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로 나누어져 있다. 그렇다고 출산지원, 보육 등 영역에 따라 부처가 나누어져있는 것도 아니다. 보육만 하더라도 복지부, 교육부, 여가부가 모두 관여하고 있다. 그럼 보육정책은 누가 책임지고 총괄하는가? 복지부 장관? 교육부 창관? 여가부 장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국무총리? 대통령? 정답은 ‘아무도 없다’이다.

그러면 한 부처가 총괄할 수 있게 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부처 내부의 부서와 사업을 보면 왜 이렇게 분담이 되어 있는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정책 기획이나 집행의 과정이나 정책 대상이나 과제별로 부서간에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 있는 구조가 아니다. 어떤 정책 영역이라도 그 정책명에 기획과, 정책과, 서비스과, 권익과, 기반과 등 기준을 알 수 없는 부서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사업 분담도 유사한 목적의 유사한 사업이라도 서로 다른 부서들이 서로 얽혀있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중간의 담당관이나 국실장이 총괄하고 있는가도 회의적이다. 그랬다면 처음부터 업무분담이 그렇게 되어있지도 않을 것이다. 중앙부처에서 개별 정책프로그램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과장급 정도이고 국실장 이상으로 올라갈수록 내용을 잘 모른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물론 고위공직자가 정책의 세부적인 내용은 일일이 모를 수 있다. 하지만 그 방향과 맥락을 잘 이해하고 총괄하는 역할을 해줘야 할텐데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담당 부처와 부서의 한계를 넘어가기 어려운 정책 생산 구조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책을 생산하는 구조는 거꾸로 작동된다. 어떤 것이 핵심적인 문제인지 진단하고,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설정하고, 그 전략을 구현할 정책수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렇게 나누어져있는 각 과별로 정책을 수집하고 모아서 분류하고, 관련 예산을 합산하여 발표하는 식이다. 그러니 합쳐놓은 예산은 적지 않은데도 정착 내용은 효과를 알기 어려운 작은 프로그램들의 백화점식 나열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정책을 연구하는 체계도 이러한 구조적 한계에 묶여 있다. 우리나라는 각 부처별로 국책연구기관들을 보유하고 있고, 정책 생산 구조의 가장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국가출연 연구기관들은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소신있는 연구를 하거나 온전한 결론을 내놓기가 어렵다.

항상 연구과정 중에 담당 부서와 협의를 하게 되는데 그 협의 내용에는 연구 요청사항 뿐만 아니라 연구의 내용과 결과까지 포함된다. 그러다보니 연구에 의한 합리적인 대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담당 부서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내용과 결론이 제한된다.

그렇다고 외부 연구자에게 위탁하는 연구는 다를 수 있을까? 역시 위탁하는 부서가 갑의 지위를 가지고 내용과 결론을 협의하는 것은 별반 다르기가 어렵다. 이렇게 나오는 정책대안이라는 것도 특정 부서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필요한 사람보다 서류 잘 꾸미는 사람이 혜택을 가져가는 지원 사업의 원리

그렇다면 그렇게라도 결정된 대책을 실제 집행하는 과정은 어떠할까? 다시 집행은 각 부처와 부서로 쪼개어서 배분된다. 그리고 역시 정책 영역별로 전략적 추진이나 효과성을 총괄하는 주체는 역시 없다. 그러다보니 집행하는 담당부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적 효과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 과정에 문제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지원사업이 내려가더라도 그 조건은 항상 까다롭고, 신청하는 사람이 증명해야할 것이 많다. 그래야 그 사업을 집행하는 담당자가 책임질 일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혜택은 지원이 필요한 사람보다 서류를 잘 꾸밀 줄 아는 사람의 차지다. 항상 무슨 지원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정작 필요한 사람은 체감하기 어려운 기본 구조가 이렇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구조가 만들어졌을까? 가장 기본적으로는 정책을 책임져야 할 정책결정자들이 정책을 주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정책결정자란 정무직 이상의 공무원이나 정치인을 말한다. 정책에 대해서 민주적 정치과정에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결정자들은 정작 정책을 잘 모르고 책임있는 결정을 하지 않으면서 정권을 잡으면 관료에게 의존하게 된다.

정책을 주도하고 책임지는 정책결정자가 안 만들어지는 이유는 이들을 뒷받침할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할 정당은 매선거마다 바뀌고, 정책예산이 있어도 낙선자 관리에 쓰이는 것이 관행이다. 규모있는 정책연구기관은 거의 국가출연기관이고, 그 외의 정책연구기관도 기업 연구소 아니면 영세한 연구단체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소신있는 정치인이 들어가도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체계가 없으니 결국 관료에 포획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정책결정자가 정책을 책임지지 못하는 구조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정책결정자가 정책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조, 전략적 방향과 정책의 효과성을 기준으로 한 추진체계, 독립적인 정책 연구와 생산 기반을 가지고 정책이 만들어지고 추진이 되더라도 성공적인 정책 성과를 만들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정책만으로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이라는 것이 최소한 전략적이고 일관된 방향을 가지고 다년간 꾸준하게 추진이 되었을 때 어떤 성과라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그렇지 못한 정책 생산과 집행의 한계를 그대로 둔 채 어떠한 효과적인 대책이 나오고, 성공적인 집행이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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