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회정책 논의에 있어서 영국은 자주 관심의 대상에 오르고 있다. 또한 베버리지 보고서 이후 복지국가 성립, 신자유주의 열풍을 주도한 대처리즘, ‘제3의 길’을 들고 나온 신노동당 등 영국의 사회정책에 있어서 사상적 체계화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제도적 선도성’은 두드러진다. 이 때문에 서구 학계에서도 국내에서도 영국 정치사상에 대한 관심은 높고, 또 그만큼 최근 신노동당에 대한 논의에서 나타나듯 여러 가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그럼에도 서구 연구에서 정치사상을 명확한 근거와 체계적 분석을 시도한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우며 국내 연구는 대부분 그러한 2차 자료의 재해석에 그치고 있다. 그래서 본 연구는 사임 뒤 일정 기간이 블레어 신노동당 정부의 선거 강령, 수상의 주요 정치 연설 등 사상의 1차적 표현물로서의 텍스트를 시대적 도전, 목표, 철학, 주체, 시민권, 주요 전략 등을 포함한 6가지 포괄적 분석틀을 이용하여 분석하고 이를 구노동당, 보수당 정부의 것과 비교 분석하여 그 발전의 맥락 속에서 심도 있는 비판적 이해를 통해 우리나라에의 함의를 찾고자 한다.
I. 서론
우리나라 사회정책 논의에 있어서 영국은 자주 관심의 대상에 오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2007년도에 사회복지학계를 비롯하여 정치권에서까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던 ‘사회투자론’ 논의를 들 수 있다(임채원, 2006; 김연명, 2007; 김영순, 2007; 양재진, 2007; 유시민, 2007; 임채원, 2007). 물론 사회투자론이 국가 체제로서 함의를 갖는가, 아니면 정책 전략상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엇갈리지만 이러한 사회투자 논의는 영국 학자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며(Giddens, 1999; Esping-Andersen, Gallie, Hemerijk and Myers, 2002),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부가 사회투자국가의 한 사례로 다루어지고 있다(김연명, 2007; 김영순, 2007). 신노동당 정부 뿐 아니라 지난 대처 정부(Thatcher Government)의 대처리즘(Thatcherism) 등 주로 영국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주로 그 사상적이나 전략적 측면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문진영(2004: 46)은 이를 영국의 ‘학문적ㆍ이념적 체계화를 기반으로 복지제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제도적 선도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영국 복지국가의 발전 과정은 구빈법 시대에서부터 기존의 복지제도의 틀에 전면적으로 도전하여 새로운 원리와 운영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일정 정도의 역사적 단절과 새로운 복지체제로의 도약을 이루어내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집권당의 정치사상 변화와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다. 베버리지 보고서를 기초로 한 복지국가 성립은 노동당의 첫 단독집권 정부인 에틀리 정부(Attlee Government)에 의해서 이루어 졌으며 이는 이후 보수당 집권 시기에 있어서도 관대한 복지정책과 완전 고용이라는 ‘합의의 정치’에 의해 유지되었다. 그리고 구노동당(Old Labour)으로 지칭되는 6~70년대 노동당의 윌슨 정부(Wilson Government, 집권기간 1964~70, 1974~6)와 칼라한 정부(Callaghan Government, 집권기간 1976~9)까지 약 35년 동안 그 정책적 틀이 이어 졌다. 그 이후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복지축소 전략은 79년 대처 정부의 집권과 함께 찾아왔으며 90년대 보수당 메이저 정부(Major Government)까지 15년이 넘게 유지되었다. 그리고 97년 블레어의 집권과 함께 찾아온 ‘제3의 길’은 2007년 블레어의 사임까지 최소한 10년 동안 정부와 정책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해왔다.
이러한 현 집권당인 신노동당의 정치사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94년 그 등장 때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정치, 사회정책 학계에서 매우 뜨거운 논란이었고 그만큼 신노동당에 대한 해석과 입장은 다양했다. 일군의 학자들은 신노동당이 구노동당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에 주목했으며(Kenny and Smith, 1997; Pimlott, 1997), 또 다른 한편에서는 얼마나 노동당의 전통적 입장을 현대적 변화에 맞춰 계승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Smith, 1994; Thompson, 1996; Rubinstein, 1997, 2000; Allender, 2001; Bevir and O’Brien, 2001). 반면 신노동당에 대한 비판은 주로 신자유주의와 같은 보수당의 사상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Hay, 1994; Heron and Dwyer, 1999; Powell, 2000).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 있어서 정작 흥미로운 지점은 이렇게 서로 다른 입장이 서로 충돌하는 가운데서 정작 누구도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부의 정치사상을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체적으로 자신의 입장에 걸맞은 신노동당 정부의 정책을 예로 들며 그것이 가장 핵심적인 변화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결국 서구의 문헌에 의존하는 국내의 연구에서도 그대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신노동당에 주목한 연구가 적지 않지만 대부분 고용, 보건, 교육, 가족정책, 정신보건 등 특정 정책 분야를 중심으로 접근하여 포괄적인 사상 분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신용주, 2002; 문진영, 2004; 신동면, 2004; 신창식, 2005; 김헌진, 2006; 신창식, 2006; 양소남, 2008). 신노동당의 사상 전반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연구가 없지는 않으나(강욱모, 2000; 이연호, 2001; 윤용희, 2002) 서구 연구와 마찬가지로 명확한 분석틀에 근거한 체계적인 접근은 결여되었으며 그 근거에 있어서 2차적 자료일 수밖에 없는 서구 연구문헌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결국 2차 자료에 대한 의존으로 그 한계는 이중적으로 반복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본 연구는 정부의 사상과 관념의 1차적 표현물에 속하는 정치적 텍스트에 대한 내용분석(contents analysis)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신노동당 정부의 정치사상을 분석하고 정의하는 작업이다. 물론 이런 정치적 텍스트를 정치적 수사로만 치부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고, 실제 정책과의 관련성도 의문이 제기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는 첫째, 적어도 10여 년 동안의 일관성을 검증하여 일시적 수사와 지속적 신념을 구분하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사상을 정의함으로써 정책과정 연구에서 있어 사상의 정책에 대한 영향을 밝히는 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블레어 수상 사퇴 이후 한 시대가 마감되어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이 시점이 신노동당 정부에 관한 이러한 작업의 가장 이상적인 시기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첫째, 신노동당 등장 이후 집중되었던 신노동당과 구노동당, 대처리즘을 포괄하는 영국 주요 정치사상의 비교학적 논쟁에 대한 문헌분석을 통하여 정치사상 분석의 기본 틀(analytical framework)을 구축한다. 이는 영국 정치사상 분석에만 유용할 뿐 아니라 영국이 세계적으로 제도적 선도성을 보여주고 있는바 다른 나라의 정치사상 분석에도 사용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구노동당과 대처리즘 정부(대처 정부와 메이저 정부) 정치 텍스트와의 비교를 통하여 신노동당이 영국 정치사상의 발전에 있어서 어떤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는지, 어떤 차별적 요소를 보여주고 있는지, 그래서 영국 정치사상사적으로 어떤 발전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밝힘으로써 해외의 정치사상 연구에 있어 그 나라 내적 맥락에서의 심층적 이해를 시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치사상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함의를 모색해 볼 것이다.
김보영. 2009. “영국 블레어 정부의 정치사상에 대한 분석 및 한국에의 함의”. 『사회복지정책』 36(2). pp. 83-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