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정치의 과잉, 혹은 부재

한국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어떤 이는 정치가 과잉돼 있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정치가 부재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치가 과잉됐다고 할 때에는 권력을 둘 러싸고 서로에 대한 편 가르기와 헐뜯기의 정도가 지나치다는 의미이다. 정치를 권력 획득을 위한 장터를 중심으로 협소하게 이해할 때 나오는 표현이다. 정치가 부재하다는 평가는 정치를 ‘삶의 형태를 결정하는 행위’로 보다 넓은 의미로 이해할 때 나온다. 즉 한국 정치가 정작 우리 사회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향하는 가치를 추구하고 비전을 실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다.

서로 다른 의미로 ‘정치’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만 결국 정치를 비판하는 내용은 유사한 셈이다. 서로 다른 세력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맹목적 쟁투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고 그 이외의 가치나 규칙 따위는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정치란 원래 어느 정도 그런 것 아닌가라는 안일한 생각은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정치를 가 까이 관찰하면서 깨졌다. 정치가 어느 정도 그런 속성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현 실 문제에 대한 합당한 해법과 대중에게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하는가를 둘러싼 정당 한 승부가 중심인 것이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른바 ‘복지정치’는 그러한 비판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우리 정치에 찾아들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이슈의 영향력이 드러나자 너도나도 복지 얘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정황은 이미 전부터 나타나 고 있었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최고의 고령화 속도는 꼭 사회복지를 고민하지 않더 라도 우리 사회에 심각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거기에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심각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양극화와 실업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가 사회복지적 대안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음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역동적 복지국가’, ‘사회연대 복지국가’, ‘한국형 복지국가’ 등 다양한 복지국가의 담론과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다. 서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겨 냥하여 ‘복지’를 화두로 한 우리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때로는 “우리가 진짜다 누구 는 가짜다”라며 선명성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의 중심적인 정치쟁점으로 사회복지가 떠오르고 있다는 데 부인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앞서 얘기한 우리정치의고질적인문제였던정치과잉혹은정치부재문제가종언을맞이하고있 는 것일까? 드디어 사회적 해법과 비전을 둘러싼 정당한 승부가 우리 정치에 찾아오고 있는 것일까?

기실 의회민주주의 산실이라고 하는 영국에서 현대 민주주의가 확립된 것도 복지국가 성립의 역사와 맞물려 있지 않은가. 귀족들이 중심이 된 보수당과 자유당의 양당 구조를 노동조합에 기반을 둔 노동당이 깨고 들어가 보수당과 노동당 양당구조로 만 든 결정적인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였던 1945년, 베버리지 보고서 실현과 복 지국가 구축을 전면에 내걸었던 노동당이 단독집권에 최초로 성공했던 순간이었다. 그 후 영국 정치는 대처의 신자유주의, 블레어의 제3의 길 등 당대 영국 사회의 새로운 대안과 비전을 두고 승부를 벌이는 장이자, 세계 정치의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공간으로 그 역량을 한껏 드러냈다.

이제 복지가 정치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우리 정치도 이러한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일까? 하지만 그러한 진단은 지극히 피상적이고 안일한 낙관이기 쉽다. 영국 정치의 흐름은 짧게 잡아도 반세기에 걸친 꾸준한 연구와 작업이 깔려있다. 산업화 이후 극 심해진 사회 문제에도 여전히 지배적이었던 개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인식에 구체 적인 연구를 통해 꾸준히 파고들었던 작업들이 있었던 것이다. 노동당 창당을 이끈 지 식인 그룹이나 페이비언협회는 1884년 결성된 후 곧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함을 깨닫고 베아트리스 웹과 같은 인사를 런던 빈곤지역이나 공장에 파견해 사 회조사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 후 웹이 참여하여 향후 복지국가 성립에 기틀을 만 들었던 1909년 왕립위원회의 소수 보고서는 조사연구 기간만 4년에 이르고 전체 위원 회에서 제출된 근거 문헌 분량만 60여 권에 달한다. 소수 보고서에서 주창된 ‘국가 기본선(national minimum)’이 실현된 것은 35년이 흐른 뒤였다.

변화를 이끌기 위한 방대한 연구작업의 예는 굳이 그렇게 멀리갈 필요는 없다. 90년대초 대처의 신자유주의 이후 대안이 부재할 때 등장해 97년 선거의 대승을 이끈 신노동당의 사상의 기틀과 핵심적 비전을 구축한 작업은 사회정책, 경제, 심리,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그 외 인사 15명으로 구성된 사회정의위원회(Commission on Social Justice)로부터 이뤄졌다.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받은 이 위원회는 1년 반이 넘는 연구 작업을 통해서 13건의 쟁점 보고서와 2건의 중간 보고서를 내놓았고, 400 건이 넘는 인사와 단체들로부터 근거를 수집했으며, 11개 주요 도시를 돌며 70개가 넘는 대학, 연구기관, 사회단체를 방문하고 도시마다 열린 포럼을 개최했다. 그 결과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최종 보고서가 1994년 출간됐다. 이 보고서가 그 이후 10 년이 넘게 집권한 신노동당의 핵심 근거와 비전을 제공한 것은 물론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앞다투어 자신이 진짜라고 내세우는 복지국가의 비전들은 얼마나 튼튼한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있는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대한 충실한 대안과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남과 나를 구분 짓고 편 가르는 것에 집 착하고 있는 것 아닌가. 복지 발전을 먼저 경험한 서구 사회 역사는 복지가 다름 아 닌 당대 사회적 도전에 대한 가장 우수한 사회적 대안으로 제시되고 선택됐던 것임을 상기할 때, 우리는 우리 사회가 현재 직면한 도전조차 제대로 진단하려고 하고 있는 가. 97년 이후 누구나 느끼는 변화의 파고 성격과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의미 있 는 대안을 도출해내기 위한 근거를 축적하려 하기보다는 신자유주의, 고용 없는 성장, 양극화와 같은 간단한 규정으로 덮어놓고는 편부터 제대로 가르고 보자고 달려 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고는 무상급식같이 선거에서 써먹을 만한 그럴싸한 공약 아이템 짜내는 것이 복지국가의 비전을 구체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앞서든 영국정치의 사례는 이미 다양한 연구와 논의가 존재하는 영국의 학문적 반 위에서 이뤄진 일이다. 한국에서 연구와 논문은 실적을 위한 편수 채우기 수단으로 전락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학자적 질문과 논의보다는 방법론이 학계를 지배하는 목적전치 현상이 이미 일반화되어 버려 학자의 주장이 점점 연구와 별개의 문제가 되어버리는, 이 척박한 우리 학술적 환경에서 우리 사회를 제대로 진단 하고 대안을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작업의 크기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러한 노력이 계속 외면된다면 우리 사회의 정치 과잉, 혹은 정치 부재는 새롭게 열렸다고 하는 복지정치의 시대에서도 똑같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고 복지동향 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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