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을 때 한참 영국에서 연구년 수행 중에 있었다. 사건 초기에만 하더라도 그런 상황이 어떠한 정신적인 영향을 줄 것인가 알 수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악영향은 분명해졌다. 하루하루가 새롭게 터져 나오는 의혹과 증거들 덕에 분노와 스트레스는 쌓여갔지만 밖에 나와 사람들과 함께 분노를 나누거나 터트릴 기회가 없으니, 가슴 답답증이 만성이 되고 뒷목은 만지면 느껴질 정도로 딱딱해져갔다.
결국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하기엔 매우 수치스러운 이야기였지만 이 곳 영국대학 동료들에게 한국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시도는 현명하지 못했다. 이내 나온 영국 동료의 한 마디. “너희는 물러날 대통령의 문제지만 우리는 브렉시트(Brexit)야.” 나의 말은 더욱 이어질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의식은 정치권을 이끌어갈 정도로 높았지만, 영국은 불과 몇 달 전 국민투표 결과로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다. 어쨌든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기대할 수 있지만 영국의 브렉시트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그 날, 학교 내의 침통한 분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모두들 말 그대로 넋이 나간 표정들이었고, 서로의 얼굴을 볼 때마다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실없이 피식거릴 뿐이었다. 유럽연합의 수많은 프로젝트와 여타 유럽 출신의 교수진과 유학생들이 있는 대학사회에 브렉시트의 충격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영국사회 이성에 대한 절망감을 주는 사건이었다. 브렉시트 캠페인의 실체가 사실 위험하게 번지고 있는 극우민족주의와 일부 보수당 세력의 무책임한 권력게임의 합작품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국민투표 결과는 유럽탈퇴가 다수였지만 리비아(Leavia, 탈퇴나라)와 리메니아(Remainia, 잔류나라), 다른 두 나라 국민으로 묘사될 정도로 양분된 영국에서 대학 지식인은 리메니아 국민이었다.
얼마 전, 주말이면 으레 함께하는 펍(Pub) 술자리에서는 영국 교수들 사이에서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 중 어느 것이 더 나쁜 일인가 논쟁이 벌어졌다. 트럼프 당선이 더 나쁜 일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브렉시트가 트럼프처럼 노골적인 인종주의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더 절망적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트럼프는 임기가 있지만 브렉시트는 임기가 없고, 이제 영국은 다른 나라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나의 나라를 돌려달라(my country back)!” 유럽연합으로부터 영국을 되찾자는 브렉시트 캠페인 슬로건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브렉시트 반대 시위자들의 절박한 구호가 되었다.
하지만 이 두 사건 모두 각각 그 나라에서 장기간 진보적 정부의 집권 후 일어난 일이었으며, 모두 그 나라의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에 실패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바마는 금융위기 이후 변화를 내세워 집권했지만 8년 집권기간 동안 이미 악화된 빈곤과 불평등은 더욱 악화되었고, 위기를 만든 금융계의 개혁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미국 국민은 – 물론 득표수에서는 안 그랬지만 미국 선거제도 하에서는 – 정권연장의 클린턴이 아닌, 더욱 확실한 변화인 트럼프를 선택했다.
지난 영국에서 10여 년간 집권했던 신노동당 정부는 기록만큼은 화려했다. 금융위기 전까지는 신노동당 집권기간 동안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장기간 안정적인 경제 아래에서 적극적인 복지정책으로 수 십만 명의 아동이 빈곤에서 벗어났으며, 최저임금제를 전면화하면서도 실업률을 떨어뜨리고, 가장 대표적인 영국 복지제도로 꼽히는 무상의료서비스(NHS)와 관련해서는 유럽평균 이하였던 보건의료 예산을 유럽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당시 신노동당 제3의 길의 기초를 제공했던 앤서니 기든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이룬 독보적인 성취”라고 극찬했었다.
하지만 영국 가디언의 경제편집장 래리 엘리어트 등 지식인들은 이는 모두 이전 대처정부 덕에 만들어진 금융거품위에 떠있는 “환상 속의 섬(fantasy island, 2007년 출판)”이라고 일갈하였다. 금융위기 직전에 나온 이 책의 예언은 바로 현실로 드러났다. 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였지만 영국은 그 중심에 있었고, 그 다음 선거의 불가피한 국민들의 선택은 위기를 부른 노동당이 아닌, 급격한 재정삭감을 주장하는 보수당이었다. 그 결과 세계화 속에서 영국 금융계가 벌인 초고소득 잔치를 허용하면서도 적극적 복지로 나머지 계층의 삶의 안정을 만들었던 신노동당의 전설은 빠르게 붕괴됐다. 빈곤과 불평등은 다시 악화되고 서민들 삶의 불안정은 심화되었다. 그 분노는 세계화를 향했고, 눈앞에 그 증거로 보이는 이민자들을 향했으며, 결국 브렉시트를 선택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10년 가까운 보수집권의 비참한 종말을 목도하고 있다. 이미 연인원 천만을 훌쩍 넘긴 광장의 분노는 단지 현 스캔들에서만 원인을 찾기에는 무리가 있다. 연이은 공약 뒤집기와 정책실패 속에서 삶이 더욱 힘들어져도 그래도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라는 최소한의 정당성이 있었지만 이 것이 통째로 사라지는 순간, 축적된 분노는 행동이 되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기실 경제성장의 추억을 자극했던 보수집권의 시작은 우리나라 경제위기 이후 급증하기 시작한 빈곤과 불평등, 광범위해진 삶의 불안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민주화 정부의 실패에 이은 것이었다. 다음 정부의 또 다른 실패는 영국의 브렉시트의 절망감이 우리의 미래가 되도록 만들지도 모른다.
기고 복지국가연구센터 뉴스레터 2017년 4월호 현안논평 http://www.welfarestate.re.kr/issue_forum/904